무당, 무당에 대해 좀 더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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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무당에 대해 좀 더 알아봅시다.

 

무속신앙의 무당등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숭배자이다.” <= 이말은 외국인 선교사가 했다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거 같습니다

 

무당 - 신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며 굿을 전문으로 하는 사제자(司祭者).

 

무인(巫人(무격(巫覡무녀(巫女단골·심방이라고도 하며, 특히 남자무당을 지칭할 때는 격() 또는 박수, 화랭이, 양중이라고도 한다.주자어류 朱子語類에 의하면 는 춤을 통하여 신을 접하기 때문에 공()자의 양측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형상을 취한 ()’자를 쓰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무당은 춤으로써 무아의 경지에 돌입하여 탈혼(脫魂)의 과정을 거쳐서 신과 접하게 되고, 거기에서 신탁(神託)을 통하여 반신반인(半神半人)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무당은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고하고, 또 신의 의사를 탐지하여 이를 인간에게 계시해주는 영매자(靈媒者)로서의 구실을 맡게 된다.우리 나라에서는 고대부족국가 때부터 무는 곧 ()’인 동시에 신과의 교섭자로서의 위치에 있었고, 그 활동은 초인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무인의 직능은 신열(神悅, ecstasy)을 공동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활용할 줄 아는 신성(神聖)의 전문가로서의 구실이었다.

 

이와 같은 무의 직능은 삼한 여러 나라의 천군(天君)이나 부여의 영고(迎鼓), ()의 무천(舞天) 등 국가적 대제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여기에서의 무인은 일반 사회인들과는 구별되는 초인적 이질성을 부여받은 자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무는 보통 인간이 미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매자로서, 그 개념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무당은 성무과정(成巫過程)의 시초에 신의 초월적인 영력을 체험하는 신병(神病)을 거친 사람이어야 한다. 이때의 신병은 신의 부름을 따르는 종교현상이며, 신과 통하는 인격전환의 계기가 되는 체험이다.

 

둘째, 무당은 신병을 통하여 얻은 영통력으로 능히 신과 만나는 종교적 제의인 굿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굿은 무당이 행하는 종교적 표현의 핵심이 된다.따라서 신병을 체험하여 영통력을 얻은 사람이라도 그 종교적 표현이 되는 제의를 독경식이나 불교식에 의존한다면 무당 본래의 제의인 굿과는 이질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민간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종교적 지지를 받아 민간층의 종교지도자로 인정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넷째, 무당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이 분명하여야 한다. 성무 초기에 어떤 신을 어떻게 체험하였으며, 그 신을 어떻게 신앙하느냐 하는 것이다. 무당이 체험하는 신은 일반적으로 산신·칠성신·지신·용신 등의 자연신, 또는 장군신·대감신·왕신 등의 인격신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무당의 유형은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눌 수 있다. 강신무는 강신체험을 통하여 된 무당으로서, 그 성무 동기는 강신으로 인한 신의(神意)에 있다.이러한 무는 우리 나라 중부 및 북부지방에 많다. 그 주된 기능은 강신으로부터 얻은 영력으로 점을 쳐서 미래사를 예언하고, 제의 때는 사제인 동시에 그 몸에 신이 실려서 신격화한다.그리고 공수神託를 내려 신의 뜻을 무당의 육성으로 전한다. 제의 때에는 무당의 몸에 신이 내려 신격화하기 때문에 신과 무가 일원화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강신무의 신사(神事)에는 대형의 신간(神竿)이 사용되지 않으며, 신간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소박한 상태의 것이다. 강신무의 무복은 각 제차마다 개별신들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옷이 있어 보통 1220종에 이른다.제의에 사용되는 무구(巫具)로서는 타악기가 위주가 되며 가무의 가락과 속도가 몹시 빠르고 몹시 흥분된 도무(跳舞)가 따른다. 한편, 세습무는 혈통을 따라 사제권이 대대로 계승되는 무당으로서, 성무의 동기는 사제권의 인위적인 세습에 있다.이러한 무당은 남부지방에 우세한데, 주된 기능은 영력과 관계없이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의 구실이다. 이들의 신사는 강신이나 신탁이 거의 없는 상태로서, 그들은 신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의 체험을 통한 몸주신이 없다. 그러므로 신단(神壇)을 만들어서 신을 봉안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제의 때에는 신과 무당이 대치하는 이원화현상을 보이며, 신사 때에는 신이 내려오는 길을 상징하는 신간을 꼭 설치하게 된다. 세습무의 무복은 극도로 축소되어 대부분 2, 3종 정도의 무복으로써 제의를 진행시키며, 무구로는 타악기 이외 취타악기·현악기까지 다양하게 동원한다. 그리고 노래의 가락이나 춤의 속도는 완만하다.또한 무당의 유형은 그 특성에 따라 무당형·단골형·심방형·명두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무당형에는 주로 중부와 북부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무당과 박수가 해당된다.

 

강신체험에 의하여 영력을 가지고 있으며, 강신한 몸주신과 그 몸주신을 모신 신단이 있고, 신의 실재를 확신하는 신관이 구체화되어 있다. 가무로 정통굿을 주관하는 사제인 동시에 영력에 의해서 점을 치기도 하는 무당이다.단골형에는 호남지방의 단골과 영남지방의 세습무가 해당된다. 단골형은 혈통을 따라 사제권이 세습되고, 사제권에 의한 단골판곧 일정지역의 관할권이 계승되며, 이것들이 무속상으로 제도화되어 있다.무당형과 달리 강신 체험이 없어 영력이 없고 구체적인 신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자기집에 신단을 갖추고 있지 않다. 신을 향한 일방적인 가무로서 정통굿을 주관하는 사제이다.그런데 영남지역 세습무의 경우 호남지역 단골의 단골판과 같은 관할구역제가 희박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에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는 사례로 보아 호남지역의 단골과 영남지역의 무당은 동계의 제도화된 무로 보인다.심방형은 제주도에 분포되어 있는 무당을 지칭한다. 이 심방형은 단골형과 같이 무의 사제권이 혈통에 의하여 계승되는 세습무로서 무속상의 제도화된 일면을 보인다.무당형과 같이 영력을 중시하며, 신의 인식이 확고하여 구체화된 신관이 확립되어 있으나 자기집에 신단은 없다. 직접적인 강신 영매가 없이 매개물인 무점구(巫占具)를 통해서만 신의 뜻을 물어 점을 칠 수 있고, 신을 향하여 일방적인 가무로 정통굿을 주관하는 사제이다.따라서, 심방형은 단골형과 무당형의 중간형태로 볼 수 있는데, 제의 때 무가 신격화하지 못하는 점에서 단골형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명두형은 죽은 아이의 영死兒靈의 강신 체험을 통해서 된 무당인데, 강신된 영()은 혈연관계가 있는 아이의 영이다.여자아이의 영이 내린 무를 명두’, 남자아이의 영이 내린 무를 동자또는 태주라고도 한다. 남부지역, 특히 호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중부와 북부지방에도 산발적으로 분포되어 있다.이 명두형은 죽은 아이의 영이 강신되어 이 영에 의한 점복을 전문으로 하는 점쟁이로, 몸에 실린 죽은 아이의 영을 자기집의 신단에 모시고 이 사령을 불러 점을 치는 초령술(招靈術)을 지니고 있으나, 가무로 정통굿을 할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무당형과 명두형은 강신에 의한 영통력이 주된 기능이어서 이 둘은 강신무계통이며, 단골형과 심방형은 사제권이 제도적으로 세습화되는 세습무계통으로 구분된다.영력을 가진 강신무는 성무하는 시초에 반드시 신병을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신병체험은 무당이 영력을 획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무당이 될 사람에게 신이 내리면 정신이상증세가 오고 신체상에도 이상질환증세가 나타나 장기간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신병의 증상은 우연히 시름시름 앓고 밥을 먹지 못하며 물만 마신다. 몸이 말라 허약해지면서 사지가 뒤틀리거나 한쪽 머리·가슴·팔 등이 아픈 편통증의 증상이 일어난다. 정신상태는 마음이 들떠 안정할 수 없고 꿈이 많아지며, 꿈속에서 신과 접촉하는 성스러운 모습을 보거나 어떤 지시를 받기도 한다. 이런 꿈이 거듭되면서 꿈과 생시의 구분이 흐려지고 생시에도 신의 환상·환각·환청을 체험한다.그러다가 증세가 심해지면 미쳐서 집을 뛰쳐나가 산이나 들판을 헤매고 다닌다. 이러한 신병은 처음에는 신체질환에서 정신질환으로 옮겨지는데, 병기간이 평균 8, 길게는 30년 동안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의약치료로는 쾌유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기 때문에 강신된 신을 받는 내림굿을 하여 무당이 되어야만 치유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내림굿을 하여 치유되었다고 해서 굿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전과 같은 신병의 증세가 재발하기 때문에 무당이 되는 것은 신이 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와 같이, 내림굿을 하여 신을 받은 뒤 내림굿을 해준 무당을 선생으로 맞아 강신자는 그를 따라다니며 굿하는 기능을 배워서 무당으로 독립하게 된다. 무당의 기능을 배우는 기간은 약 3년이고, 선생무당을 신어머니로 삼으며, 강신자가 여자일 경우는 신딸, 남자일 경우는 신아들이 되는 신계조직(神系組織)이 성립된다.

 

세습무의 성무 과정은 호남의 단골과 영남의 무당이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호남의 단골에게는 각각 단골판이라는 일정한 관할구역이 주어져 있다. 이 단골판 안에서의 제의나 사제권은 단골판의 소유권과 함께 혈통을 따라 대대로 세습되고, 이 사제권의 계승에 따라 단골이 된다.그러나 사제권은 부계를 따라 계승되고, 직접 굿을 하는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여서, 여자가 사제권을 소유한 남자와 혼인하는 것이 단골이 되는 계기가 된다.이렇게 혼인이 되면 남자의 어머니인 시어머니 단골이 며느리를 굿판에 데리고 다니면서 굿하는 기능을 가르쳐 완전한 무당을 만든다. 영남지방의 무당은 호남지역의 단골과 같은 단골판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과거에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무당이 되는 과정은 호남의 단골과 동일하다. 이들 세습무는 사제권의 소유자와 무계혼(巫系婚)으로 결합한 뒤 학습을 통하여 성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 강신무의 성무 동기는 강신인 데 비하여 세습무의 성무 동기는 사제권의 혈연적 세습이다.고대부족국가에 있어서의 는 제의를 주재하고 정치를 하는 군()의 기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점차 사회가 분화되어 제()와 정()이 분리되면서 무는 사제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치병·예언 및 유희적 기능이었다.

 

첫째, 사제의 기능은 무의 원래 기능이었다. 따라서, 무는 각종 거국적인 치제(致祭)에 공적 주술자로서 관여하는 동시에 개개인의 무사(巫事)에 사적 주술자로서도 관여하였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주술을 행하는 공적 주술자들은 고정된 장소에서 무의(巫儀)를 주관한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대한 보수를 직접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서 사적 주술자들은 개개인의 안녕을 위하여 주술을 행하는데, 이들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무의를 주관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요구한다. 현재는 사적 주술자의 사제기능만이 행해지고 있다.

 

둘째, 치병의 기능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라 유리왕 19(42) 9월 왕이 병에 걸렸을 때 무당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무의 치병기능은 조선사회에서도 여전히 발휘되었다. 세종 때 열병이 유행하게 되자 세종은 무격들을 동원시켜 병을 고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구병 활동에 힘쓰지 않는 무격들을 크게 논죄하는 한편, 구병에 힘쓴 무격에 대해서는 무세(巫稅)를 감하여주고 부역을 면제하여주었던 일도 있었다.그리하여 왕 자신이나 궁중의 사람이 병을 얻으면 무당을 자주 불러서 이르게 하였고, 일반민중들 역시 질병이 발생하면 무당으로 하여금 쾌유를 빌게 하였다. 이처럼 병이 발생하면 무격에 의하여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무당은 그들의 사회로부터 치병의 기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무당을 도성 안의 병자구호를 주임무로 하는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에 소속시켜 관에서 직접 무당들을 지휘통솔하기도 하였다. 이는 무당들을 구병 행위에 쉽게 동원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셋째, 무당은 미래사를 예지하는 예언적 기능을 발휘하였다. 전문적 점자(占者)인 이들을 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대우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의 관상감(觀象監), 고려시대의 태사국(太史局), 조선시대의 서운관(書雲觀) 등이 이러한 직제의 하나였다. 그리고 여기에 소속되었던 일관(日官일자(日者무사(巫師점자(占者) 등은 모두가 예언의 기능을 인정받았던 무인이었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대사를 결정하기에 앞서 무인들의 예언을 들었고, 일반 민중들 역시 크고 작은 일이 있으면 무당을 찾아가서 미래를 점치는 일이 크게 성행하였다. 이때 무인들은 한결같이 지신강아(至神降我)’라고 하여 신이 곧 자기의 육신에 접하였음을 자처하였고, 자기가 말하는 것이 곧 신의 계시임을 강조함으로서 그 예언이 절대적임을 믿게 하였다.

 

넷째, 유희적 기능 역시 상고시대부터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의에 임한 무당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도약을 하고 공수한다. 이것이 제삼자의 눈에는 일종의 유희로 반영되기도 했던 것이다.특히, 파제(罷祭)에서 참여자들이 한데 어울려 먹고 마시며, 무당과 더불어 춤추고 노래부름으로써 그 제의가 발휘하는 유희적 기능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후대에 내려올수록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유희적 본능은 점차 노골화하여 마침내 무제(巫祭)굿·놀이·풀이로 변하였다.

 

특히, 무제의 제차 중에서도 신을 즐겁게 하는 오신 행위(娛神行爲)’는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굿이 되었다. 이 오신 행위로 인하여 굿은 주술적 신성성이 약화되고 오락적인 경향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집행하는 무당이 흥미위주의 유희로 전개시켜 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그러나 무당이 성욕이나 물욕, 저주행위 등 나쁜 일에까지 깊이 관여하였던 조선 후기에는 그 신분이 크게 하락하였다. 무당 스스로의 타락은 신분의 하락을 자초하였던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 무속신앙 자체가 미신으로 간주되게 됨에 따라, 무당은 음성적인 사제자·치병자·예언자로 취급당하고 있다.

 

무구 무당이 굿할 때나 점을 칠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

 

제의도구로서의 무구는 장구··제금 등의 무악기(巫樂器)와 신칼·작두 등의 도검류(刀劍類), 엽전·산통 등의 무점구(巫占具) 및 방울·지전·부채·오색기 등의 소도구가 있다. 무구 자료는 중부·영동·호남·영남·제주도·이북지역으로 구분하여 그 종류와 형태 및 기능을 살펴볼 수 있다.

 

(1) 중부지역의 무구

 

중부지역에서 무가와 춤의 반주 악기 중 타악기로 장구(테 지름 42, 길이 70(지름 41제금(지름 28) 등의 타악기가 있고, 현악기로 해금이 있으며, 취주악기로 피리와 젓대가 있다. 장구··제금은 무당이 소지하는 악기이고, 피리·젓대·해금은 무악 반주의 전문 악사인 잡이가 소지한다.

 

큰 굿에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잡히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악기는 피리 2, 해금 1, 젓대 1, 장구 1, 1이다. 이렇게 구색을 갖추지 못할 때는 외잡이, 즉 피리 하나, 좀 나으면 양잡이, 즉 피리와 해금 각각 하나씩이고, 삼잡이는 피리·해금·젓대가 각각 하나씩 있게 된다. 피리 하나가 딸리는 외잡이굿은 간소한 굿이고 보통 굿은 피리와 해금이 딸리는 양잡이로 한다. 큰 굿이라야 삼잡이가 딸린다. 이 때 외잡이·양잡이·삼잡이에 관계없이 언제나 기본이 되는 것은 장구와 제금이다.이들 무악기는 무가를 부르고 춤을 추기 위하여 사용되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악기는 장구이다. 장구는 바리공주풀이같은 무속신화를 부를 때 무당이 한 면만 두드리기도 하고, 신들려 공수를 줄 때 장구를 쳐서 대답을 하기도 한다. 이밖에 악기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목탁과 경쇠가 있는데, 이것들은 굿에 직접 사용되지 않고 신을 모신 방의 신단에 치성을 드리며 축원할 때 무당이 사용한다.

 

도검류로 언월도·삼지창·신칼·작두가 있다. 언월도와 삼지창은 장군굿거리나 신장거리를 할 때 무당이 신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하여 손에 들고 춤춘다. 삼지창은 이밖에 신에게 굿의 효험 여부를 판결하기 위한 사슬세우기를 할 때 돼지머리나 소머리를 찍어 거꾸로 세우는 데도 사용한다. 작두는 무당이 신의 영검을 보이기 위하여 작두타기를 할 때 사용한다.

 

무당은 맨발로 쌍날 작두 위에 올라서 춤을 추며 공수神託를 내린다. 신칼은 대신칼이라고도 하는데 잡귀를 물리칠 때 무당이 손에 들고 휘저으며 축원하는 도구이다. 굿을 다 마친 후 신칼을 땅에 던져 칼끝의 방향으로 신들이 굿을 잘 받았는지 여부를 점치기도 한다. 칼끝이 밖을 향하면 순조롭게 굿을 받은 것으로 믿는다.

 

도검류의 형태를 보면, 언월도는 길이 70의 나무자루에 50의 반달형 쇠날이 박힌 칼이고, 삼지창은 80길이의 나무자루에 30길이의 세 갈래로 된 쇠창살이 박힌 것이다. 작두는 80길이의 쇠 칼날 두개를 15폭으로 그 양 마구리를 고정시킨 쌍 칼날이다. 신칼은 20길이의 쇠(또는 대나무)칼에 백지의 종이 술(길이 40)을 여러 개 잡아맨 것이다.

 

무점구로는 엽전과 점통·점책·점상이 있다. 점상은 쌀 33홉을 상 한가운데 모아놓고 신수(身數)를 볼 사람의 생((성명(姓名주소를 대며 축원한 다음 쌀 무더기 주위에 흩어진 쌀알의 수를 보고 점을 친다. 이것을 쌀점이라 한다. 엽전을 가지고 점을 칠 때도 엽전 7개 또는 9개를 손에 들고 쌀점 칠 때와 마찬가지로 축원하며 흔들다가 점상 위에 던져 그 엽전이 포개지는 수를 보고 점을 친다.

 

쌀이나 엽전의 경우 둘씩 포개진 것을 빼낸 홀수가 맨 마지막에 떨어져야 좋다고 믿는다. 점통은 얇은 대쪽(너비 0.5, 길이 12)에 육효(六爻) 점괘를 표한 60쪽의 산()을 담은 원통(통나무 속을 파내었음.)인데, 이것을 들고 쌀점과 같은 식의 축원을 하며 흔든 다음 뽑은 산의 괘를 점책 괘에 맞추어 운수를 맞히는 것이다.

 

이상 예거(例擧)된 무구 외 방울과 부채가 있다. 방울은 무당이 신을 청할 때 손에 들고 흔들어 소리를 내는 강신(降神)용구이고, 부채는 무당이 춤을 출 때나 인간에게 복을 줄 때,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모의동작에서 사용된다. 부채는 부처 셋을 그린 삼불선(三佛扇), 칠성을 그린 칠성선(七星扇), 일월을 그린 일월선(日月扇) 등이 있다.

 

(2) 영동지역의 무구

 

이 지역의 무악기로는 장구··꽹과리·제팔이(제금)가 있다. 무악기는 굿할 때 무가와 춤의 반주로 쓰이는 것인데, 이 중에서도 장구가 주역이 된다. 무악기는 특별히 신장이라고 해서 무당 집에서 신성하게 모신다. 굿을 하러 가기 전이나 끝나고 돌아오면 무당은 악기 앞에 술 한잔을 올린다.

 

무악기의 배열을 보면 굿상 앞에 무당이 서고 그 무당을 중심으로 해서 반원형으로 무악기가 배치되는데, 무당 정면에 장구와 징이 있고 그 좌우로 각각 꽹과리가 배열되고, 제팔이는 보통 장구의 좌측 꽹과리 다음에 앉는다. 굿에서 장구··제팔이는 각각 하나로 기본이 되고 굿의 대소 규모에 따라 큰 굿에는 보통 꽹과리가 46개까지도 동원된다. 이들 무악기의 형태나 크기는 앞에서 본 중부지역의 것과 같은데, 장구는 중부지역의 것에 비하여 작은 편으로, 크기가 4550가 되고 조립식으로 간편하게 들고 이동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무점구로는 명두점에 사용되는 명두(明斗)와 명두 바릿대가 있다.

 

명두는 3두께의 놋쇠 원판(길이 20)이 반구형으로 약간 옴폭한 것인데, 볼록한 바깥쪽은 거울처럼 반질거리고 오그라든 안쪽은 거친데, 여기에 일월(日月)과 칠성(七星)이 박혀 있다. 그리고 오그라든 안쪽 중심에 지름 2의 놋쇠고리가 달리고 이 고리에 약 2m의 무명 끈이 달려 있다. 명두바릿대는 지름 25내외, 높이 13내외의 나무 함지박에 찹쌀을 가득 채워놓은 것이다.명두의 사용방법은 명두바릿대의 쌀에, 명두에 달린 무명끈 목을 바싹 손으로 잡고 명두판을 수직으로 꽂아놓으며 축원한다. 그 축원내용은 점치는 장본인의 생··성명을 대고 점치는 사유를 대며 잘 거두어달라는 요지이다.축원이 끝나면 명두를 명두바릿대에서 뽑아 명두판 안쪽에 쌀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점을 치게 된다. 명두를 쌀이 붙은 채 명두바릿대에 톡톡 쳐서 쌀알을 떨어내어 최후로 남는 쌀알이 홀수이면 길하다. 쌀을 놓는 점상이 있는데 중부지역의 것과 유사하다.

 

도검류로는 대 신칼이 있다. 길이 20, 너비 3의 쇠칼에 10길이의 백지의 종이 술이 달린 것이다. 용도는 굿이 처음 시작되는 부정굿에서 무당이 평상복에 두건을 하고 굿상 앞에 앉아 대 신칼을 들고 부정굿 무가를 구송하고 나서 일어나 그 대 신칼로 사방을 휘저어 부정을 헤쳐내는 데 사용된다.그리고 굿의 맨 마지막 순서인 거리풀이에서 화랭이鼓手가 대 신칼을 들고 서서 거리풀이무가를 구송하면서 굿에 모여들었던 온갖 잡귀를 퇴송시키는 데 사용된다. 이밖에 굿 도중 제차인 장수굿에서 굿상 앞에 놋쇠로 된 동이에 대신칼을 넣고 굿을 하여 장군신의 위엄을 보이는 데도 사용한다.이상으로 보아 대 신칼의 기능은 잡귀나 악신을 위협하고 무찌르는 무기의 성격을 지닌 무구이다. 이밖에도 부채와 방울이 있는데 형태와 용도는 앞에서 본 중부지역의 것과 비슷하다.

 

(3) 호남지역의 무구

 

호남지역에서 굿할 때 반주되는 무악기로는 장구···피리·젓대·해금·가야금·아쟁·정주 등이 있다. 장구··징은 단골이 기본 무악기로 갖추는 것이고, 피리·젓대·해금·가야금은 전문 무악사(巫樂士)인 고인들이 휴대하고 다닌다. 장구···피리·젓대·해금의 형태와 크기는 중부지역의 것과 같다. 가야금의 형태와 크기도 일반 국악악기로 쓰는 가야금과 같다.

 

정주는 절에서 쓰는 경쇠와 같은 것으로 제석굿을 할 때 무당이 손에 들고치면서 무가를 부른다. 호남지역의 무악기는 타악기로 장구··, 관악기로 피리·젓대, 현악기로 해금·가야금이 사용되어 관··, 3종의 악기가 쓰이고 있다. 악기 외 신칼과 지전(紙錢)이 굿에 사용된다.신칼은 너비 2, 길이 20의 대쪽의 끝에 백지의 종이 술(길이 36)을 단 것인데 단골이 굿을 할 때 손에 들고, 특히 망인의 넋을 올릴 때 사용한다. 지전은 돈을 상징하는 것으로 백지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인데, 단골이 춤을 출 때 손에 든다.

 

(4) 영남지역의 무구

 

이 지역에서 굿할 때 무악의 반주악기로 사용하는 무구로는 장구··제팔이(제금꾕쇠(꽹과리피리·젓대·호적 등의 무악기와, 놀이칼(신칼방울·수징(首釘) 등이 있다.

 

·제팔이는 중부지역의 것과 형태와 크기가 같고, 꾕쇠는 영동지역의 것과 같다. 다만, 장구가 중부지역에 비하여 작은데 그 크기는 길이 37.5, 장구통 지름 22, 테의 지름 40이다. 꾕쇠는 지름 20, 전의 높이 4.8이며, 징은 지름이 35, 전의 높이 9로 다른 지역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제팔이는 지름이 13, 중부지역의 제금에 비하여 형태는 같으나 크기는 다소 작은 편이다.

 

·피리·젓대·호적 등은 다른 지역의 것과 형태나 크기가 같고, 이들 무악기는 별신굿과 같은 큰 굿에서나 사용되며, 보통 굿에서는 장구··꾕쇠·제팔이만 사용된다. 특히 젓대는 청신삼현이라 하여 각 석(: 굿거리)을 시작하기에 앞서 연주한다. 놀이칼은 중부지역의 신칼과 같은 것인데, 너비 3, 길이 20의 대쪽에 40길이의 백지의 술을 단 것이다. 화랭이가 굿의 맨 마지막 순서인 거리굿(거리풀이)에서 이 놀이 칼을 들고 굿에 모여든 잡귀를 퇴송시킬 때 사용한다. 방울은 중부지역에서 사용하는 것과 형태가 비슷한데 길이 0.3의 철사를 U자형으로 꼬부려 지름 3.3의 방울이 달려 있다. 한쪽에 방울이 2, 다른 한쪽에 방울이 1개 달려 있고, 방울대 전체 길이가 13.3이다. 이 방울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약 60여 년 전까지 사용되던 것이다. 수징은 너비 6.8, 길이 13.3의 얇은 놋쇠 판에 봉황 1쌍을 서로 마주보게 음각하고 중앙에 자형 구멍이 뚫렸으며, 하단에 5.5길이의 촉이 붙어 큰 머리의 앞에 꽂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이 수징 한 쌍 역시 현재는 쓰지 않고 과거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60여 년 전까지 별신굿과 같은 큰 굿에는 해금·가야금·거문고 등의 현악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현지 무당들로부터 들어서 알 수 있다.

 

(5) 제주도의 무구

 

제주도에서 굿에 사용되는 무악기는 장구··대영(꽝쇠(꽹과리바랑이(제금요령(搖鈴설쇠가 있다. 이들 무악기는 굿할 때 무가와 춤의 반주악기로 사용되는데, 제주도에서는 타악기가 무악기의 주류를 이룬다 이들 무악기의 형태와 크기를 보면, 장구는 테의 지름 26, 전체길이 47로 다른 지역의 장구에 비하여 매우 작다. ·꽝쇠(꽹과리북의 크기와 형태는 일반적인 것과 같다. 바랑이는 지름 12로 타지역의 것에 비하여 극히 작은 편이며 형태는 일반적인 것과 같다. 요령은 지름 6의 옴폭 팬 놋쇠로 만든 종 모양의 것에 길이 80의 청····백색의 헝겊 끈이 달려 있다.

 

설쇠는 놋쇠로 만든 양푼 모양으로 지름 20, 높이 12의 크기인데, 사용방법은 이것을 엎어놓고 지름 0.8, 길이 20의 실로 딱딱하게 꼬아 만든 끈 두개를 양손에 하나씩 갈라 쥐고 두들긴다. 무점구로는 멩두明刀와 천문(天門)이 있다.

 

멩두는 놋 쇠칼에 종이 술이 달린 것인데, 술을 잡고 두 개를 동시에 바닥에 눕혀 칼날이 앉는 위치를 보고 점을 치는 데 사용한다.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있는 모습이 길하다고 믿는다. 천문은 상잔과 함께 상판에 놓고 던져서 역시 그 떨어진 모습을 보고 점을 친다.

 

(6) 이북지역의 무구

 

황해도·평안도 등 이북지역의 무구에는 칼이 많다. 먼저 잡귀를 풀어 먹이는 신장 칼이 있는데 놋쇠로 만들고 자루는 나무이다. 돼지를 잡아 타살굿을 할 때 양손에 들고 휘두르면서 춤춘다. 장군 칼은 작두거리에서 사용하는 칼이고 칠성검은 칠성굿을 할 때 사용한다. 그외 대신칼, 사슬을 세울 때 사용하는 삼지창, 길이 1가 넘는 큰 칼도 있다.장군신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드는 것이다. 그 외 오방기가 있고 신을 청할 때는 방울을 든다. 방울은 특히 조상을 모실 때 중요한 무구이다. 제석굿을 할 때는 작은 갱쇠를 들고 반주하면서 무가를 부른다. 굿을 할 때는 반드시 명도를 모셔놓는데 명도는 여러 개를 한지에 싸서 신체로 모신다. 황해도에서는 광대라고 부르는 탈이 있어서 대동굿이나 배연신굿을 할 때 무녀가 머리에 얹는다.지금까지 살펴본 무구들의 지역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형태적인 면에서 볼 때 남부지역, 특히 제주도와 영남지역의 무구는 중부·북부 지역의 것에 비하여 현저하게 작다. 무악의 기본악기인 장구는 남부의 것이 작으며, 제금(악기)도 남부의 것이 작다. ·북부지역의 무구에는 언월도·삼지창·작두와 같은 도검류가 있는데, 남부지역에는 형식화된 도검류로 신칼이나 멩두(제주도)가 있을 뿐이다.

 

무구 중에서 무악기의 종류로 볼 때 중부·북부 지역에는 타악기가 주종을 이루는 인상을 주나 호남지역의 경우는 타악기 외 관악기와 현악기가 고루 쓰인다. 피리·젓대·해금은 중부지역에서도 쓰이나 북부지역에서는 장구···꽹과리 등 타악기 일색으로 갖춘 인상을 준다. 제주도의 무구는 다른 지역에 비하여 독특한 면이 있다.

 

북의 사용에 있어서 북채 둘을 양손에 갈라 잡고 북의 한 면을 두들기는 사용법은 타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것이다. 설쇠와 멩두·산판도 독특한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제주도를 제외한 남부지역은 중부·북부에 비하여 무점구가 극히 희박한 편이다. 이상과 같이 중부·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의 무구가 지역적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무당의 기능에 따른 제의상의 차이에서 오는 원인이라 생각된다. , 중부·북부 지역은 강신무가 주류를 이루어 신의 영력 위주로 제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강신의 황홀경으로 몰입해가는 데 필수적인 타악기와, 그 신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도검류가 필요하게 된다. 이에 비하여 남부지역의 세습무는 신의 영력이 없기 때문에 황홀경으로 몰입되지 않아 춤과 무악이 완만하여 현악기가 사용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무점구 역시 세습무는 영력이 없어 점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무복 무당이 굿할 때 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입는 의례복

 

 

무복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신복·입석·신입석·신령의대·신령님옷등으로 불린다. 지역별로 중부·영남·호남·영동·제주도, 그리고 북부로 나누어 각기 그 지역의 실태를 중심으로 무복의 기능과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복의 종류와 형태는 각 지역 또는 무당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1) 중부지역(서울중심)

 

장군치마·저고리 : 장군치마는 남색이고, 저고리는 엷은 하늘색이다. 형태는 민간인들이 입는 일반적인 부인용 치마저고리와 같다.

 

호구치마 : 호구치마는 홍색이고, 형태는 민간인이 입는 일반적인 부인용 치마와 같다.

 

구군복(具軍服) : 두루마기 모양과 같이 소매가 좁으나 동정이 없고 뒤가 터져 활동하기 좋게 되었으며, 검정 색인데 양 소매만 붉은 색으로 되어 있다.

 

전복(戰服) : 남색으로 되어 양 소매가 없고 앞이 터졌으며 뒤에도 등 밑이 아래까지 터지고 양 겨드랑이 밑이 터졌다.

 

남철릭藍天翼: 직령(直領)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소매가 넓고 길다. 전체가 남색으로 되어 양 소매 끝 1척이 백색으로 되어 있다. 이 옷을 입으면 양 소매 끝이 땅에 닿는다.

 

홍철릭紅天翼: 형태는 앞의 남철릭과 같고 색만 붉은 색이다. 양 소매 끝 1척이 백색으로 되어 있다.

 

백장삼 : 형태는 남철릭과 같고 전체가 백색으로 되어 있다.

 

흑장삼 : 형태는 남철릭과 같고 전체가 검정 색으로 되어 있다.

 

불사(佛師): 형태는 백장삼과 같고 전체가 회색이다.

 

부인 옷 : 원삼(圓衫)과 동일하며 연두색 바탕에 양 소매가 색동으로 되어 있다.

 

창부(倡夫): 초록색 바탕에 양 소매가 색동으로 되어 있고 양옆구리가 터졌으며 앞섶과 뒷섶이 무릎 위에 닿게 짧다.

 

몽두리 : 형태는 두루마기 모양과 같이 소매가 좁고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옷고름이 없으며, 전체가 노란색이다.

 

신장(神將): 두루마기와 모양이 같은데 전체가 노란색이다. 이밖에 부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무복은 원삼과 백지로 접은 고깔이 하나씩 있는데, 원삼의 형태와 색채는 서울지역의 부인 옷과 같으며, 종이고깔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세모꼴 고깔이다. 이 지역에서는 원삼을 활옷이라고도 한다.

 

(2) 호남지역

 

이 지역에는 현재 무복이라 할만한 의례복이 없다. 무당이 굿을 할 때는 정결한 흰색의 평상시 복장 그대로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다. 아주 큰 굿이 있을 때 제석풀이에나 굿 주인집에서 흰색 두루마기를 빌려 입고 백지로 접은 고깔을 쓴다. 그러나 요즈음은 두루마기도 입지 않는 경향이다.

 

나이 많은 노부들에 의하면 그들이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입는 무복으로 신입석이라는 것을 보았으나 자기들 대()에 와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한다. ‘신입석은 소매 없이 양옆구리와 등뒤가 터졌고, 겉은 남색, 속은 홍색이었다는 점으로 보아, 오늘날 다른 지역의 무복으로 전복과 같은 형태의 것으로 보인다. ‘신입석을 입으면 머리에는 고깔을 썼다.

 

(3) 영남지역

 

현재 영남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복은 남색 쾌자가 있다. 이 쾌자의 형태는 서울지역의 것과 같다. 전에는 활옷도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은 활옷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쾌자만 사용되고 있다. 쾌자는 거리굿을 제외한 굿의 전과정에 사용된다. 굿을 할 때는 무당이 쾌자를 입고 가슴에 너비 4, 길이 7척의 청색 띠를 띠고 머리를 얹는다. 머리를 얹는 방법은 쪽을 풀어 두 가닥으로 나누어 땋고, 한 끝에 붉은 댕기를 드린 다음 앞으로 돌려 이마 위로 감고, 그 위에 흰 머리띠를 잡아맨다.

 

(4) 영동지역

 

영동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복에는 쾌자와 활옷 두 가지가 있다. 쾌자는 쾌지라고도 하는데, 그 형태는 서울지역의 전복과 같다. 다만, 쾌자를 입고 가슴에 띠를 띠는 것이 다른데, 그 띠는 영남지역의 것과 같다. 활옷의 형태는 철릭과 유사하고 명주와 양단 판에 색동 소매를 붙였다. 활옷을 입을 때는 가슴에 띠를 매는데 그것은 쾌자에 사용하는 띠와 같다.

 

(5) 제주도지역

 

제주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복은 관디冠帶와 섭수 두 가지가 있다. 관디는 홍색의 도포(道袍)인데, 여기에 검정 갓을 쓰고 무릎 밑에는 행전(行纏)을 친다. 관디는 큰 굿을 할 때 사용되는 무의 복장이다. 섭수는 남색 쾌자를 흰 두루마기 위에 입고 머리에 송낙이라 하여 백지 고깔을 쓰며, 가슴에 너비 12의 홍띠(또는 노랑띠)를 띠고 무릎 밑에는 행전을 친다. 섭수 차림은 보통 굿을 할 때의 무의 복장이다.

 

(6) 북부지역(평양중심)

 

이 지역의 무복으로 칠성옷·신령님옷·장군옷·대신옷·대감옷·관복·사신군복·중국장군옷·창부옷·애기씨옷·도령옷·외신대감옷 등 12가지가 있다. 이런 무복의 형태는 명칭상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서울지역의 무복에서 본 형태와 유사하여 철릭·창옷·쾌자류의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무복은 제의 (굿)에서만 입는 의례복이다. 무복의 종류가 많은 것은 굿의 각 제차거리마다 해당 신의 상징으로 무당이 입기 때문에 무복의 수는 굿에서 제의를 받는 신의 수에 비례한다. 무당이 굿에 임할 때 무복을 입고 방울을 손에 쥐면 몸으로 신이 내린다.그래서 무당은 무복을 입으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무당이 아니라 비범한 신권적 존재로서의 무당이 되고, 그렇게 되면 무당은 신이 몸에 실려 신격화하여 신의 말인 공수를 내리게 된다. 무복은 이렇게 신의 옷으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늘 신성물로 다루게 되고, 굿이 아닌 평상시에는 손으로 만지기조차 두려워한다. , 무복이 오래되어 때가 끼거나 상하게 되면 빨거나 깁는 일없이 불에 태워 없애고 다시 새것으로 만들며, 무당이 죽으면 불에 태워 없앤다. 이와 같은 신성적 금기 때문에 무복은 언제나 당대에서 끝나고 대를 물리는 일이 없어 오래 전해지지 못한다.

 

굿할 때 각 거리마다 무복을 입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부정거리 : 평상시의 복장으로 한다.

 

말명거리 : 위에는 평상시의 저고리를 입고, 아래에는 남색의 장군치마를 입으며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든다.

 

가망거리 : 구 군복을 입고 오른손에 부채와 백지 2, 왼손에 방울과 백지 1장을 든다.

 

상산거리 : 남색의 장군치마를 입고 그 위에 구 군복·전복·남철릭의 순으로 껴입고 머리에는 홍갓을 쓰며, 왼손에 삼지창, 오른손에 언월도를 들어 장군신의 위엄을 상징한다.

 

별상거리 : 아래에는 장군치마를 입고 위에는 구 군복을 입으며 그 위에 전복을 껴입는다. 머리에는 안올림 벙거지를 쓰고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삼지창을 들어 별상신의 위엄을 상징한다.

 

대감거리 : 전복을 입고 머리에 안올림 벙거지를 쓰며, 짚신 한 켤레를 새끼로 뒤축을 꿰어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엇비슷이 맨다. 이 짚신을 걸립대감이라 한다.

 

불사제석거리 : 호구치마를 입고 그 위에 백장삼을 입으며, 머리에는 백고깔을 쓴다. 그리고 너비 30, 길이 3m 가량의 붉은 띠를 가사(袈裟)’라 하여 어깨에 엇비슷이 걸친다.

 

호구거리 : 호구치마만 입고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든다.

 

성주거리 : 홍철릭을 입고 머리에 홍갓을 쓴다.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왼손에 방울을 든다. 성주거리가 끝나고 부군거리를 놀 때도 복장은 성주거리와 동일하다.

 

군웅거리 : 성주거리와 복장이 같다.

 

창부거리 : 창부 옷을 입고 오른손에 부채를 들어 창부 신을 상징한다.

 

뒷전거리 : 평상복으로 오른손에 부채만 든다. 뒷전거리 중의 영산을 놀 때부터는 부채도 안 든다. 이와 같이, 무복은 굿의 각 거리마다 해당 무신의 상징으로 그 신의 옷이란 의미로 착용되고 있다. 무복을 착용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에나 무복의 옷고름이나 단추를 매지 않고 그대로 옷의 양팔만 꿰어 몸에 걸친다. 옷을 꼭 잡아매지 않는 것은 아마도 신의 강신과 회송이 무당의 몸에서 자유롭게 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북부지역 무속에서는 무복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남부지역에서는 무복이 점차 인멸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북부지역의 무속에서 무당 한 사람이 무복을 1020종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하여 영남이나 제주도에서는 무당 한 사람이 무복을 2종 정도만 가지고 있으며, 호남지역은 아예 무복이 인멸되어 현재는 굿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수적인 면에서 남부와 중·북부지역 무속에서 무복의 차이가 현저하고 무복의 형태면에서 볼 때 남부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복이 쾌자나 활옷류로 중·북부지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 관디라 하여 도포를 무복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무복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북부지역 무속에서는 무복이 신복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굿에서 반드시 입어야 하지만, 남부지역에서는 무복이 인멸되었거나 신복으로의 기능이 희박하여 굿에서 무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무복의 지역적 차이는 그 지역에 분포된 무당의 기능과 관련된다. ·북부지역에는 강신무가 지배적이고 남부지역은 세습무가 지배적인데, 강신무는 무당이 되는 성무(成巫) 초기부터 신병을 체험하여 신의 실재를 믿고 그 신의 영력으로 굿을 하며 인간의 길흉을 점치기 때문에 그 신의 신복으로서 무복이 중요시되지만, 남부지역의 세습무는 신적 영력이 도태되고 굿은 대대로 세습되는 무의 사제권(司祭權)에 의하여 의식을 집행하게 되어 신복으로서의 무복이 중요시되지 않고 점차로 인멸된 것이다. 같은 남부지역에서도 강신무 계열의 일종인 명두의 경우는 정통한 굿을 할 수는 없지만, 제의에 임할 때는 신복을 상징하는 무복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무복의 지역차 문제는 그 지역에 분포된 무당의 성격적 기능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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