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체와 간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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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체는 문장이 좌우지간 깁니다. 따라서 주어 서술어의 호응이 맞지 않을수도 있고, 호흡이 길어 읽기 불편하고, 설명투의 문장이 될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현대 소설에서 만연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겠습니다.
단, 감정을 터뜨릴 경우라든지 하는 때에는 만연체의 문장이 빛을 발합니다. 호흡이 길어 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간결체는 짧은 문장들을 엮었기 때문에 호흡이 짧아 읽기에 편하고 쓰기도 편합니다. 긴박한 상황묘사에서 효과가 극에 달합니다. 또한 가장 기초적인 문장을 엮어서 수식어를 보태는 방식이기 때문에 효율적입니다. 현대 독자들 역시 만연체보다 간결체를 훨씬 선호합니다.

간결체로는 상황묘사가 잘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편견이 되겠습니다.
문장이 짧다고 해서 표현에 제약이 있을 수는 없겠습니다. 소설가 이외수 씨도 문장을 짧게 잡으라고 권하면서 이런 문장을 보여줍니다.

나는 사방에서 매미들이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목청을 다해서 발악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오솔길을 혼자 쓸쓸히 걷고 있었다.

-> 나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혼자였다. 오솔길은 비좁아 보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발악적이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으면서도 문장이 짧습니다. 물론 위의 예시 역시 만연체가 아니긴 합니다.


만연체는 근대소설에서 지겹도록 많이 발견됩니다. 간결체는 현대소설에서 애용되구요. 보통 만연체는 문장이 어지러워 현대소설에서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님이 문장에서 애용한다는 만연체도 사실 만연체가 아닐 가능성이 50% 이상입니다.

만연체라 함은... 이런 거죠.

말할 수 없는 환희 속에 우리가 느끼는 감상은 물론, 우리가 간밤에 고운 누이 이같이 내려서 쌓이는 것도 모르고, 이 아름다운 밤을 헛되이 자 버렸다는 것에 대한 후회의 정이요, 그래서 설사 우리는 어젯밤에 잘 적엔 인생의 무의미에 대해서 최후의 단안을 내린 바 있었다 하더라도 적설을 조망하는 이 순간에만은 생의 고요한 유열과 가슴의 가벼운 경악을 아울러 맛볼지니, 소리 없이 온 눈이 소리 없이 곧 가 버리지 않고, 마치 그것은 하늘이 내리어 주신 선물인거나 같이 순결하고 반가운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또 순화시켜 주기 위해서 아직도 얼마 사이까지는 남아 있어 준다는 것은, 흡사 우리의 애인이 우리를 가만히 몰래 습격함으로 의해서 우리의 경탄과 우리의 열락을 더 한층 고조하려는 그것과도 같다고나 할는지!

이 모든 문장이 단 한 문장입니다. 이런 게 만연체입니다.
이런 것도 '밤에 눈이 온 것을 몰라 아쉽지만 눈이 남아있으니까 좋더라'는 걸 이렇게 늘여놓은 것이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바꿔서 또하고 하는 것뿐.

묘사의 차이는 '화려체'와 '건조체'에서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의 문장 역시 '만연체'이면서 '화려체'입니다.

[출처] 만연체와 간결체|작성자 소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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