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무협용어 17. 녹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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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를 녹綠

수풀 림林

 

오늘의 무협 용어는 녹림이야.

 

원래 다른 거 설명하려고 자료 조사하다가 아까 갤에서 녹림으로 떡밥 돌길래 급하게 주제 바꿔서 올림.

 

 

1. 역사 속 녹림

1) 녹림

 

녹림이란 단어는 실제 역사에서 온 거임.

 

전한이 멸망하고 왕망의 신나라가 세워지자, 왕망은 무리한 개혁과 정치로 나라가 엉망이 됨.

 

이때 군부 출신의 왕망이란 자를 지도자로 세워 녹림산에서 농민들이 농민봉기를 일으킴.

 

하북성의 녹림산, 현재는 대홍산이라고 불리는 에서 난을 일으켰다고 해서 녹림병이라고 불렀음. 7~8천명 정도 모였다고 함.

 

이때는 역성혁명을 위해 모인 민란의 성격이 짙었지만, 신나라가 금세 무너지고 후한이 나름 통치를 잘하면서 농민 봉기적 성격을 잃어버림.

 

그 후에는 다들 흩어져서 농민으로 돌아갔고, 몇몇만 남아서 녹림을 유지했다고 함.

 

그러다 종국엔 범죄자, 도망자들이 모여들면서 산적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이후 '녹림'이란 단어가 산적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됨.

 

 

2) 양산박

 

중국 역사상 종교 집단이나 농민 봉기가 아닌 성격의 산적 집단 중에서 가장 유명한건 산동의 양산박이었음.

 

양산박은 산동에 있는 지명임. 사방이 광활한 늪지대인데 가운데에 우뚝 산이 솟아 있음. 기병도 보병도 접근하기 힘든 천혜의 요새였음.

 

송나라때 산적들이 알음알음 모이다가 송강 등 36명이 우두머리가 되면서 본격적인 산적질을 시작했는데, 그 정도가 엄청났음.

 

결국 관군에게 토벌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그 임팩트가 너무 커서 이후 수호지라는 소설이 되어 지금까지 전설로 내려옴,

 

 

2. 중국 무협 소설에서의 녹림

1) 김용의 <<사조영웅전(1951)>>에서의 녹림

 

김용의 사조영웅전에서는 중하수급의 무공을 익힌 의적집단으로 묘사됨.

 

하지만 녹림채 같은 본거지를 둔 게 아니라 정의를 위해 모인 일시적인 집단 정도에 불과했고, 집단명같은 것도 없었음.

 

그냥 녹림의 무리라는 식으로 묘사되는게 끝. 도적이라서 '녹림'이라는 대명사를 가져다 붙인 느낌임.

 

 

2) 와룡생의 <<웅검지(1961)>>에서의 녹림

 

우리가 아는 녹림의 형태가 바로 여기서 나타남.

 

소설 전반부의 주인공 냉면염라 호백령은 사람을 마구 죽이는 흑도출신이었지만, 선량한 마누라를 얻고 나서 개과천선함.

 

하지만 과거 전적이 있어서 백도로는 못 갔고, 흑도는 벗어나고 싶으니 정사지간인 녹림에 투신함.

 

웅검지의 녹림은 장강 이북, 즉 강북의 6성에만 있는 조직이었음.

 

소설은 이 강북6성의 녹림도들이 모여서 녹림의 맹주, '지체'를 뽑기 위한 모임을 항산(=북악)에서 열게됨.

 

냉면염라 호백령은 이 모임에서 10명의 녹림 고수를 모두 꺾고 '지체'가 되며 총표파자라고 불리게 됨.(총표파자 설명은 지난번에 했음)

 

호백령은 미종곡이라는 곳에 녹림 본부를 설치하고 녹림이 정사지간의 중도를 걸을 것을 천명함.

 

그리고 사대계율을 세워 녹림도들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것을 명령함. 이게 어느정도 통하나 싶더니, 흑백양도의 고수들이 호백령을 못믿고 죽여버림.

 

 

3) 양우생의 <<무림삼절(1972)>>에서의 녹림, 금도채

 

여기선 녹림의 여러 채들 중 금도채金刀寨가 중심이 됨.

 

금도채는 명나라 초기 안문관의 장군(가상)인 주건이 세우는 데, 주건은 실제 녹림의 역사처럼 원래 무장원이라는 무관이었으며, 안문관의 총병이었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양문관 밖에 산적 마을을 설립하고 금도채라고 이름 붙임.

 

금도채의 목적은 산적질이 아니라 즉 북쪽의 오랑캐에 저항하고 명나라 군대에 저항하는 거였음.

숫자는 적지만 워낙 세력이 강해서 명나라와 오이라트의 두 세력 사이에서 희미하게나마 완충역할을 했고, 명과 오이라트는 금도채를 건들지 못함.

 

금도채는 산적질이 아니라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았고 품위를 유지해서 강호에서 존경을 받았음. 그 덕인지 점차 북부 녹림의 맹주로 자리잡게 됨.

강북, 그중에서도 산서성 쪽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금도채에 도움을 요청했고 채주는 금도채를 이끌고 도와줬음.

 

이름만 녹림이지 사실상 군부 출신의 관리가 다스리는 규율 빡센 무력집단이었고, 다른 무림세가처럼 주씨 가문이 이끄는 세력이었음.

거기다 산서성의 세력가인 석씨 가문의 딸과 2대 채주 주산민이 결혼하면서, 명분과 무력을 동시에 챙겨 실질적으로 섬서 무림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함.

 

김용의 <<협객행>>에도 금도채가 나오지만 이름만 같은 걸로 보임.

 

 

3. 한국 무협에서의 녹림.

1) 녹림 18채? 36채? 72채?

한국 문협에서의 녹림은 산적집단인건 맞는데 요상하게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음.

이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게 중국에서 가장 잘나갔던 산적집단인 양산박도 산동성 일부에서만 활동했지 다른 지역은 엄두도 못냈음.

아마 녹림도의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당장 관군이 다 쓸어버릴 거임. 양산박이 당했던 것처럼.

 

18, 36, 72, 심지어 108채까지 불어나기도 하는데 이건 그냥 중국이 18, 36, 72, 108 등의 숫자를 상서롭게 여겨서 그냥 가져다 붙인 걸로 보임.

실제로 중국 무협에서는 녹림 18채 이런거 없음.

현실의 녹림산(대홍산)에 있는 녹림채에는 18경이라는 명소가 있는데, 여기서 따온 걸지도 모르겠네.

(근데 옛날부터 유명한 관광지에는 18경 명소가 있는건 클리셰나 마찬가지라...)

 

2) 녹림도의 무공?

녹림의 무공은 잡다한 걸로 유명함.

녹림에 투신하는 이들이 대부분 배고파서 산으로 도망쳐오는 농민들이라 기본기가 없을뿐더러

가끔 흘러들어오는 다른 문파의 도망자들의 무공을 받아들이다보니 잡다해지기 때문.

 

보통 부술, 즉 도끼로 하는 무공이 유명하다고 하면서 녹림왕, 녹림채주 등은 거대한 도끼를 들고 나오는게 클리셰임.

산적이다보니 나무를 베는 도끼에서 무공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는 설정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배틀 액스 급 도끼로 나무 할 정도면 음.... 그냥 그 도끼 팔고 검을 사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임ㅋㅋ

무공도 도끼술보다는 다른 문파 애들한테 배운 검법이나 권법 쓰는게 나을 거고.

 

기본적으로 중국 농민들이 가지고 다니던 무기는 죽창이나 몽둥이 정도였고,

그나마 고급 무기가 대도(박도)로 정글도 비슷하게 생긴 큰 칼이었음.

 

아마 이 정도 무기를 들고 다니는게 일반적일거라고 생각됨.

물론 돈많이 번 녹림도나 종사급 총표파자라면 대형 도끼를 들고 도끼술을 창안해낼 수도 있겠지.

 

 

4. 장강수로채

나중에 장강수로채를 따로 설명할까 했는데 너무 내용이 짧아서 그냥 여기다 씀.

당나라나 송나라 기록에 보면 장강에 수적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장강에 수적이 종종 나타나긴 했음.

 

장강이 중국 물류 유통의 핵심이라 관군이 잘 다스리긴 했지만, 먹고 살자면 뭘 못하겠음?

대신 그래서인지 현실에서는 수적이 크게 성장하지는 못함.

장강이 아니라 바다로 나가면 국가 반역 급으로 커지는 정성공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대신 녹림과 다르게 중국 무협에서는 장강수로채가 등장함. 정확히는 장강연환십이오수도라는 단체임.

 

홍콩 무협작가 온서완이 쓴 <<신주기협(1981)>>에서 나오는 세력인데,

 

주협무라는 영웅이 소림과 무당의 무공을 모두 체득해 절정의 고수에 오른 뒤 장강의 세력을 규합함.

 

그래서 장강72수도(중국은 수로水路라고 안하고 수도水道라고 하더라.)와 황하36분채의 총타주가 됨.

 

근데 신주기협이라는 소설이 등장할때쯤이면 중국 무협의 영향력이 좀 줄어들고 구무협 작가들이 자생하던 때라 이게 영향을 받은건지 아닌건지는 솔직히 모르겠음.

 

 

+추가

무림 고수의 경지에 대해서 설명해달라는 요청도 많았고, 아까 보니 녹림 채주가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부분만큼은 죄다 한국 무협작가들이 마음대로 창안한 경지가 많아서 할말이 없음.

 

그냥 작가 마음대로 하는게 맞다고 생각됨.

 

화경이니 현경이니 생사경이니,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이런거 다 한국에서 만든거임.

 

특히 중국에선 초절정이 있을 수가 없는게 '초超'라는 한자접두어는 일본이 super를 번역하면서 쓴 단어라서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잘 안씀. 번역단어에나 많이 쓰이는 접두어임.

 

그러니 녹림 채주의 무공 경지는 알아서 정하자.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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