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무협용어 07. 검기, 검강(장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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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소드마스터 어서오고.

 

검 검劍

기운 기氣

 

너무나 흔하고 한자를 굳이 풀이하지 안하도 모두 알고 있으며 무협의 알파이자 오메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없으면 아쉬운 것이 바로 검기.

 

근데 내가 항상 무협용어 풀이하면서 되풀이하는 멘트가 있지.

 

ㅇㅇ가 사실은 한국 무협 클리셰다?!?!?!

 

검기도 사실 비스무리함.

 

 

1. 중국에서의 검기

 

원래 검기는 선협의 개념에 가까웠음. 봉신방연의나 서유기같은 고전기서를 보면 검에서 빛이 나와 적들의 목을 날려버리는 보패가 자주 등장함.

 

무협으로 돌아오면

 

김용 선생 등 예전 초창기 무협을 보면 고수의 상징은 검기가 아님. 아니 애초에 검기가 등장하질 않음.

 

고수의 상징은 대부분 손바닥만 쳐도 내상을 입히고 뒤로 물러나게 하는 강력한 장법이나 사자후(요즘엔 개나소나 다쓰는)같은 다중 공격기임.

 

심지어 장풍도 80년대 쯤에야 유행했던걸로 기억한다.(내가 그때 무협을 봤다는 건 아니고 그때쯤 나온 무협에서 봄)

 

유일하게 검기와 비슷한 무형의 기운으로 공격하는 무공이 김용 선생의 말년 작품인 천룡팔부임.

 

3주인공 중 한명인 단예가 육맥신검이라는 무공을 배우는데, 이게 검법이 아니라 손가락에서 기운을 쏘아내는 일종의 탄지공임.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내공이 소모되어서 당대의 절대고수가 손가락 하나 쓰는 것도 힘들어함. 주인공은 기연을 얻어서 열손가락 다 쓰긴 하지만.

 

초창기 무협은 그래도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편이라 검기같은 판타지가 아닌 검술의 오묘함, 막강한 내력을 가지고 등장인물의 강함을 표현했음.

 

이게 그당시 무협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확 티가 나는데 1970~80년대 무협 영화를 보면 아무리 CG의 한계가 있다지만 검기의 묘사가 일절 없음.

 

피아노줄타고 경공은 겁나 표현하는데 절대고수가 검기하나 없이 몸으로만 강함을 표현함.

 

그나마 나오는게 바위를 가른다는 묘사 정도? 근데 이것도 보통 검기가 아니라 명검을 표현할때 쓰더라.

 

그러면 검기는 언제 나오고 유행하기 시작했냐?

 

80년대 후반 무협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대충 나타나기 시작함. 이것도 빛으로 묘사되는 게 아니라 장풍처럼 터지고 흙먼지가 날리는 식으로.

 

이때쯤부터 장풍, 검기상인(검기를 날려 원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것)의 경지가 영상으로 표현됨.

 

 

2. 한국에서의 검기

 

한국도 비슷한시기부터 검기가 무협소설에서 유행하기 시작함.

 

내가 초딩때 처음으로 봤던 무협이 1994년작 대도무문이었는데 이때 이미 검기는 물론이고 검강도 단계별로 나타나는 걸 보면 80년대 후반부터는 쓰이기 시작한 듯.

 

아마 VHS로 들어오는 중국 무협 드라마의 영향도 있었을 거고 이건 내 추측인데 일본 영향도 조금 있었을 거라 생각함.

 

일본 사무라이 소설이 알음알음 한국으로 번역되어서 들어오던 시기였는데, 일본에서도 검기라는 개념이 있음.

 

우리처럼 막 빛이 나고 쇠를 무처럼 썰어버리는 그런 검기가 아니라, 검이 발하는 예기? 검사가 뿜어내는 무형의 기운? 그런 느낌으로.

 

이걸 한국 작가들이 잘 살린거 아닐까 생각해봄. 처음에 썼듯이 봉신연의나 서유기의 영향도 있었을 거 같고.

 

 

3. 1세대 검기

 

여튼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무협은 검기와 장풍의 시대였음.

 

보통 노회한 전대 고수들은 장풍을 쏟아내고, 주인공 같은 젊은 고수들은 검기를 쓰면서 세대교체가 일어난 느낌?

 

그래서 주인공들의 새로운 역량, 즉 기존의 장풍쏘고 사자후 터뜨리는 고수들을 앞서기 위해 화려한 기술이 필요해졌음.

 

이때의 검기는 쇠를 무자르듯 자르고 상대의 검을 끊어내는 신공이었음.

 

검기를 얼마나 잘쓰느냐는 얼마나 크고 길게 뽑아내느냐에 따라 달렸음. 명검의 기준도 날이 잘드는 검이 아니라 검기를 얼마나 버텨내는 검이냐에 따라 갈렸고.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는 것이 검기상인. 즉 허공을 격해서 검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이었음.

 

검기상인 정도면 이미 작중 최고 고수의 수준이었지.

 

 

4. 1.5세대 검기

 

하지만 파워인플레가 일어나듯 너나나나 할것없이 주인공을 더 강력하게 보이기 위해 작가들이 눈을 부릅뜸.

 

그래서 작가들이 '검강'을 만들어냄. 검기보다 단단하며 무엇도 자를 수 있는 검기의 최고봉!

 

근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내 주인공은 더 세다! 하면서 작가들이 만들어 내기 시작한게 무형검강이니 진검강이니 별게 다나옴.

 

이거랑 차별을 두기 위해 검강의 라이벌 경지로 등장한게 이기어검술이었음.(이건 나중에 따로 설명)

 

 

5. 2세대 검기

 

이제 작가들은 딜레마에 빠짐. 검기는 기본이 되었고 검강은 최고 경지로 남겨둬야 했음.

 

그런데 내 작품에 새로운 경지를 넣고 싶음. 어떻게 해야 할까?

 

떡협지 시대를 지나 대본소 무협 시기로 들어오면서 작가들도 젊어짐.

 

문화 개방이 되고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스타워즈 같은 특수효과 쩌는 영상매체를 접하고

D&D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도 접하기 시작한 작가들은 창의적인 경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함.

 

검기를 두른 칼로 만들어 내는 검막, 검기를 실로 뽑아내어 만드는 검사, 검기를 구슬처럼 만들어 파괴력을 높인 검환

 

심지어 검향도 나옴. 대체 검기랑 냄새랑 뭔상관이지?

 

이미 구무협의 검법 위주의 시대는 갔고 누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검기를 다루느냐가 고수의 증명이 되는 시대가 옴.

 

특히 비뢰도를 보면 이때 엔간한 검기 사용법은 다 나온듯ㅋㅋ

 

검강은 너무 단순하니 검기와 검강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로 여기는 경향이 있음.

 

 

6. 2.5세대 검기

 

반면 검기가 고수의 대명사가 되자 다른 장르에서도 검기가 나타나기 시작함.

 

무림 고수가 판타지 세계로 간 차원 이동물, 혹은 그냥 판타지의 기사들이 오러블레이드를 쓴다는 묘사.

 

검기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던 무협과 달리 단순히 기를 뽑아내는 1~1.5세대형 검기였지만, 충분히 위력적이고 신선한 시도였음.

 

특히 판타지 기사가 오러블레이드를 쓰는 묘사는 솔직히 정판 쪽에서는 설정붕괴에 가까웠지만,

 

그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이젠 너도나도 쓰기 시작하기에 이름. 그래도 뭐, 검기라고 안한게 어딤. 오러블레이드 이름도 간지남.

 

 

7. 검기에 대한 총평

 

검기가 딱히 한국의 고유 설정이라곤 하지 않겠음.

 

이미 봉신연의나 서유기같은 중국 전설속에서도 빛을 내뿜는 검은 널리 유명했고,

 

스타워즈 이후로 빛을 내는 검과 빛이 나가는 원거리 공격이 임팩트있게 자리 잡아버림.

 

영상매체에서 빛을 내는 참격을 날리는 클리셰는 이제 중국으로 역수입 되어서 중국 무협은 온통 검기 투성임.

 

그만큼 빛을 내는 에너지의 공격이란 건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멋짐이니까.

 

검기 설정의 문제점은 한국 작가들이 검기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너무 여러가지를 만들어냈다는 거임.

 

결국 지금까지 쓰이는 설정은 검막 정도를 제외하곤 보이지도 않음.

 

개조의 끝은 순정이라고 요즘엔 검기 그 자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많아 보임.

 

 

워낙 유명한 개념이고 할말이 많다보니 길어졌다. 검의 다른 경지는 다음에 설명하도록 할게.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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