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의 갑옷들(1) - 아머라 불리는 것들
중세 유럽의 갑옷
대체로 볼 때에, 중세 유럽의 갑옷은 같은 시기의 동양 갑옷보다 육중하고, 단단하며, 뽀대가 납니다. 그 이유는, 서양과 동양의 무기, 검술의 차이, 더 근본적으로는 제련술의 차이에 있습니다.
중세 서양의 제련술은 같은 시기 동양의 그것에 비해 매우 초라한 수준이었습니다. 강철이라고 부를 만한 금속을 만드는 기술이나, 그것을 이용하여 무기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따라서 당시 만들어진 검은 몇 번 사용하지 않아 표면이 부서져 나가면서 무디어 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휘어졌습니다.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서 무기의 크기가 커지고 육중한 파괴력으로 효과를 보는 종류의 것들이 나타납니다.
같은 이유로 상대의 공격을 자신의 무기로 막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최악의 경우엔 양쪽의 무기가 모두 박살 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검을 쥐는 방법은, 고동을 움켜쥐는 식입니다. 동양처럼 고동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으로부터 손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지요. 따라서 전적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은, 방패와 갑옷에 의존하게 됩니다.
덧붙여, 이러한 방식의 검술로는 철로 만든 갑옷을 뚫기가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철판을 우그러뜨려 적의 신체에 피해를 입히는 게 합당하지요. 따라서 철판 갑옷 Plate Armor 과 같은 것들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의 검은 철판도 가를 수 있을 정도의 강철검을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만약 서양의 기사가 동양 세계에 나타났다면 별 손 쓸 틈도 없이 갑옷이 찢어지면서 죽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기사의 랜스 차지는 공포 수준.)
서양의 전쟁의 역사는 무기와 갑옷, 전술이 서로 맞물리면서 함께 발전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갑니다. 중세 중기 이후에 전신 철판 갑옷 Full Plate Armor 같은 것이 등장하게 되면 무기쪽에서도 이 만만찮은 갑옷을 넘어 충격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나오죠. 핼버드라던가, 밀리터리 픽, 스틸레또, 궁극적으로 잉글리쉬 롱보우나 석궁이 등장하면서 갑옷의 실용성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결국엔 화약 무기 앞에 밀려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도 갑옷이란 존재는 꽤 오래 존재하여, 대항해 시대 보병들의 기본 무장엔 브레스트 플레이트라는 식의 둥근 철판 갑옷이 들어갑니다.
갑옷의 명칭
영어권에서 갑옷을 이르는 말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Armor와 Mail이 그것입니다.
Armor는 흔히 말하는 갑옷으로서의 일반적인 단어입니다. 대부분의 갑옷은 armor에 속하며, 이 단어는 그대로 arm(무장하다)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Mail은 원래 '그물의 코'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프랑스어 maille(마이)가 그물이란 뜻인데 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군요. 보통은 가장 대표적인 갑옷인 체인 메일 chain mail을 의미하며 이에서 다양하게 파생되어 다른 갑옷의 이름에도 덧붙여 졌습니다.
아머(Armor)라 불리는 갑옷들
하이드 아머 Hide Armor
말 그대로, 생물의 가죽을 그대로 둘러 써서 공격을 막아내는 형태의 갑옷입니다.
생가죽 갑옷은 매우 커다란 동물(예를 들어, 코끼리 등)의 두꺼운 가죽이나, 소와 같은 일반적 동물의 가죽 여러 장을 덧붙여 만들어집니다. 헤라클레스가 입고 있던 그 유명한 '절대로 안 뚫려요'표 사자 가죽이 이 갑옷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갑옷은 방어력에 비해 너무 두껍고, 무겁고, 또 불편합니다. 때문에 문명 사회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야마닝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인 갑옷이며, 또 그들은 이 갑옷에 특별한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이 갑옷이 그들에게 동물과 같은 힘과 능력을 부여하며, 반대로 금속 갑옷은 그들에게서 그러한 본능을 빼앗아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갑옷은 가죽 갑옷에 비해 방어력은 좋지만, 훨씬 불편하고 또 수명도 짧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물 가죽의 고약한 냄새를 온몸으로 감싸안아야 할 것입니다.
레더 아머 Leather Armor
자주 오해들 하시는데, 가죽 갑옷의 재료는 부드러운 가죽 - 부츠나 가죽 옷을 만드는 - 이 절대 아닙니다. (만약 그런 걸 갑옷이랍시고 입었다간 단 칼에 가슴팍이 주욱!) 가죽 갑옷은 무두질한 가죽을 끓는 기름 안에서 끓인 후에 사람의 가슴 틀 위에 잡아 늘리면서 굳힌 것입니다. 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튜닉 등의 옷과 잘 어울리죠. 추운 지방이라면 부드러운 가죽이나 모직물로 만들어진 레깅 legging이 추가됩니다.
이 갑옷은 중세 갑옷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가죽과 기름을 구하는 것은 굉장히 쉽지요. 중세의 일상에서 가죽은 아주 일반적인 생산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죽을 기름에 끓여서 늘려 굳히는 기술도 가죽 세공사에겐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잘 운용하기만 한다면, 시골 마을에서 군대 단위의 갑옷을 생산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욕이나 반란이 터지는 건 둘째로 치고).
주된 재료는 소가죽이 쓰였지만, 그 외에도 말, 양, 낙타 등의 가죽을 사용합니다. 사실 곰이나 코끼리 정도의 두꺼운 가죽이 아니라면 뭐든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곰이나 코끼리로는 하이드 아머 Hide Armor를 만드는 쪽이 몇배 나았겠지요.
가죽 갑옷은 싸면서 동시에 견고합니다. 딱딱하기 때문에 흉갑 정도가 한계이긴 하지만, 결국 이것은 대부분의 갑옷에 적용되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즉, 관절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거죠. 이 문제는 인류 역사상 끈질기게 따라다닐 문제가 됩니다.
보통 전쟁이 격해지면 가죽 갑옷을 매 주 교체해야 할 필요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갑옷들에 비해 청소하기도 쉽고,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동시에 마모에도 잘 견디는 편이라 제대로 만들어 진 놈이라면 몇 달 동안 매일 같이 사용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은퇴한 전사들이나 혹은 중상층의 민병들은 가죽 갑옷을 한 벌 정도 가지고 있으며 1년에 한번 정도 꺼내어 손질을 하곤 합니다.
가죽 갑옷은 다른 갑옷에 비해 큰 이점을 몇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싸고 구하기 쉽습니다.
둘째, 질병의 위협이나 불편함 없이 오랜 시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 만들기 쉽기 때문에, 점령지에서 약탈한 가축을 가지고도 새로 만들 수 있습니다.
넷째, 녹이 안 슬면서도 제법 견고해서, 별다른 관리 없이도 오랜 시간 보관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용각산인가?)
사실 가죽 갑옷의 가죽 부분은 거의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버클 부분이나 조임쇠 따위가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지만, 이나마도 갑옷 위에 옷을 겹쳐 입는 방식으로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도둑들에게,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이득입니다. (게다가 가벼워서 입기도 좋지요.)
브리간딘 아머 Brigandine Armor
이 갑옷은 스플린트 메일 Splint Mail과 스터디드 레더 아머 Studded Leather Armor의 발전형입니다. 기본 구조는, 부드러운 가죽이나 두꺼운 천 위에 작은 금속판을 한 겹 리벳으로 박아 넣고, 다시 그 위를 천이나 가죽으로 덮어 싸는 형식입니다. 또는 두 장의 가죽 사이에 작은 철판을 고정시킨 형태도 존재합니다.
이 갑옷은 세 가지의 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가죽 갑옷 등에 비해서는 소리가 좀 나는 편이지만, 그래도 체인 메일이나 스플린트 메일 등에 비해서는 조용합니다. 따라서 산적 등이 많이 사용합니다. (이름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둘째, 멀리서 봐서는 사용자가 갑옷을 입고 있는지 아닌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가 철판으로 몸을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셋째로, 두 장의 천 사이에 사용자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대강 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는 동전이나 보석에서 시작해서, 지도, 자기 보호용 트랩, 작은 무기 따위가 포함됩니다.
이 갑옷은, 일반적인 시골의 대장장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급의 갑옷입니다. 이 갑옷 이상의 것은 아마도 도시의 갑옷장이를 찾아가야 하겠죠. 또한, 서양 초기 중세 시대에 나온 최고의 갑옷이기도 합니다. 만약 배경이 되는 세계가 기사 이전의 중세 암흑기를 배경으로 한다면, 이 갑옷이나 스케일 메일 정도가 가장 훌륭한 갑옷일 것입니다.
이 갑옷은 어떤 천으로도 만들 수 있으며, 어떤 물체 - 단단하기만 하다면 돌멩이던 금속 쪼가리던 간에 - 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해적들과 도적들(brigands)이 이 갑옷을 선호합니다.
패디드 아머 Padded Armor
누비 갑옷 (퀼티드 아머, Quilted Armor) 이라고도 불립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갑옷들 중 가장 간단한 형태로, 두 장의 견방사 옷감 사이에 두꺼운 솜을 채워 넣고 바느질로 잘 누벼서 만들어낸 형태입니다. 보통 가슴과 어깨를 덮는 정도입니다만, 가끔은 완전한 형태의 갑옷 역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갑옷은 대체로 가난하거나 혹은 기술력이 낮은 사람들이 입습니다. 정규 군대의 경우는, 아무리 졸병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갑옷을 입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능력에 비해 너무 크고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통은 가죽 갑옷 등을 입게 되죠. 대체로 작은 농촌의 민병들이나 깡패들, 야만인들 따위가 이 갑옷을 입습니다.
다른 갑옷에 비해 이 갑옷은 굉장히 잘 망가집니다. 어쨌거나 '여러 장의 옷'이기 때문에 쉽게 헤어지거나 더러워 질 수 밖에 없고, 다른 갑옷에 비해 기생충이나 땀 먼지 등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잘 갈고 닦아 봐야 한달 이상 가기 힘들며, 정글이나 숲 속 등지에서 사용할 경우엔 이삼일에 한번은 교체해야 합니다.
많은 아내들과, 여동생, 그리고 딸들은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급히 추스려, 그들의 남편과, 오빠, 아버지 그리고 아들들을 위해 패디드 아머를 만듭니다. 아마도 제대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생존을 절실히 바라면서 만들게 되겠지요.
스터디드 아머 Studded Armor
가죽 갑옷이 딱딱하게 굳힌 가죽임에 반해, 이 갑옷은,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 져 있습니다. 대신, 공격을 막는 대부분의 역할은 가죽이 아닌, 그 가죽에 박혀 있는 금속 리벳이 맡게 됩니다. 가죽은 단지 리벳을 제대로 잡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 갑옷은 '가난한 자의 금속 갑옷'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격이 싸면서도 여기저기 박혀 있는 금속 리벳으로 공격을 막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 갑옷은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으며 또 만들기도 간편했다고 합니다. 특히 리벳의 경우에는 원래 구하기가 쉬웠던 데다가, 그나마 어려울 경우에는 못이나 조약돌 따위를 주워서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죽은 아래 설명할 것처럼 다른 대용품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죽 외에 다른 일반적인 튼튼한 천을 사용하기 했는데, 역시 가죽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졌겠죠. 이들 가죽 혹은 천은, 상당히 쉽게 망가집니다. 이것은, 이들에 구멍을 뚫어 리벳을 박아 넣기 때문입니다. 몇번 사용하다 보면 이 구멍을 통해 가죽이나 천이 쉽게 망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리벳이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이 지경이 되면 갑옷으로서의 생명은 다 했다고 봐야죠.
이 갑옷은 해적 등의 뱃사람들에게 많이 선호되었습니다. 이는 이 갑옷의 몇가지 특징 때문입니다.
첫째로, 가죽 갑옷에 비해 방호력이 더 나으면서도 가벼웠습니다. 이 점은 해상 전투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데, 대부분의 전투원들이 방패를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패를 팔에 메고 있다가 바다에라도 떨어지면 암담할 걸요.) 따라서 좁은 배 위에서 신속하게 움직이면서도 적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둘째로, 가죽 갑옷에 비해 몸의 움직임을 잘 방해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바다에 떨어져 수영을 해야 할 때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죽으로 만들었으니 만큼, 바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바로 갑옷을 버리긴 해야 했겠지요.
이 점은 브리간딘(Brigandine)에도 똑같이 적용되며, 그 갑옷 역시 뱃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갑옷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선원이 아닌, '적선 탑승 전용 전투원' 따위의 자들은 생각없이 바로 가죽 갑옷 따위를 입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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